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문화산책] 고원 시인의 4.29 시(詩)

해마다 4월 하순이 되면 사이구(4.29) 폭동의 악몽이 검은 연기처럼 스멀스멀 되살아난다. 타오르는 불길과 시커먼 연기, 약탈자들의 난동, 부자동네만 지키는 경찰, 이른바 지붕 위의 총 든 사나이들, 그리고 평화의 대행진….   미주 한인 이민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의 기억이다. 올해는 한층 더 아프게 되살아나는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 백인우월주의, 인종차별로 이어질 위험이 큰 불법체류자 단속과 추방 때문이다.   다인종 다문화 사회인 미국의 화약고인 인종 갈등, 그것이 화산처럼 폭발한 사이구는 이민 예술작품의 중요한 소재이기도 했다. 폭동을 다룬 많은 글과 연극, 영화 등이 발표되었다. 폭동 30주년이었던 지난 2022년에는 미주한국문인협회와 LA한국문화원이 힘을 모아 사이구 폭동 주제 문학작품을 묶은 〈흉터 위에 핀 꽃〉이라는 제목의 두툼한 책을 낼 정도였다.   이렇게 많은 문학작품 중 가장 빼어난 작품을 꼽는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고원 시인의 시를 꼽고 싶다. 고원 시인의 〈검은 눈물로 거듭나〉, 〈L.A. 애가(哀歌)〉, 〈빛깔이 많은 노래〉와 〈줄넘기〉 등의 작품들은 단연 돋보인다. 사건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헤치는 예리한 시각, 절제되고 울림이 큰 시어(詩語)와 품격이 조화를 이룬 예술성으로 긴 생명력을 갖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폭동의 빌미가 된 두순자 사건을 주제로 한 〈검은 눈물로 거듭나〉는 1992년 2월에 발표된 작품으로, 다인종 다문화 사회인 아메리카 합중국의 구조적 갈등을 고발한다. 다섯 토막으로 구성된 ‘짧은 서사시’인 이 작품에서 시인은 비극적인 총격 사건을 통해 한국 여인, 이민자의 갈등과 한을 안타깝게 노래하며, ‘눈물로 비는’ 모습으로 화해와 용서를 호소한다. 이 시는 영문으로 L.A.의 한인/흑인 시인 합동 시낭송회에서 시인 자신이 낭독한 바 있다.   폭동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한 〈L.A. 애가(哀歌)〉는 1992년 5월, 그러니까 폭동 바로 직후에 쓴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의 아우성이나 생경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절제된 언어로 구원과 희망을 노래한다.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불바다와 잿더미 속에서도 ‘서로의 눈을 간절히 보라’고 호소하며, 폭동의 유일한 사망자인 이재성 군을 통해 한인사회의 단결과 희망을 역설하고, 교포들이 자발적으로 펼친 추모의 평화행진에서 희망을 읽는다.   이 작품은 꽤 큰 규모의 서사시로 시극(詩劇)으로 공연해도 전혀 무리가 없고, 장엄한 칸타타의 가사로 쓰여도 좋을 탄탄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에 비해 폭동 1주년에 발표한 시 〈빛깔이 많은 노래〉와 〈줄넘기〉는 마치 순수한 동시나 어린이 그림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아름다운 빛깔의 무지개와 어린이들의 즐거운 놀이인 줄넘기를 통해 상처의 치유와 화합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이 시는 소박하지만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다양함의 아름다움과 놀이를 현실 극복의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폭동의 원인, 실상, 극복의 지혜를 노래한 이 작품은 미주 한인이민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고원 시인은 1925년 12월 8일, 충청북도 영동에서 태어났다. 올해 탄신 100주년이 된다는 이야기다. 이를 축하하고 기념하여, 남가주 한인문단에서 이런저런 행사가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한국에서는 문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문학행사가 흔히 열리고 있지만, 미주에서는 처음이라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 세기의 세월 동안 시인의 시 세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특히 디아스포라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세우고 지켜 왔는지, 긴 세월 꾸준히 뿌려온 씨앗이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 등을 종합적이고 폭넓게 고찰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 되살핌은 오늘날 우리의 사회에 직접적인 교훈이 될 것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고원 시인 고원 시인 미주 한인이민사 흑인 시인

2025-04-24

[문화산책] 이민사 연구와 예술적 감동

“아부지”   하와이의 한 공동묘지에 쓸쓸하게 놓여있는 묘석에 새겨진 ‘아부지’라는 한글 세 글자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한장의 사진이 참 많은 것을 말해준다. 중앙일보의 연재 기획기사 ‘한인 이민 선조의 비명(碑銘)을 찾아서’의 한 부분이다.   우리의 뿌리를 확인하는 이런 기사가 참 반갑다. 수고해준 취재기자들과 신문사에 감사하며, 앞으로 이런 기사가 많이 실리기를 희망한다. 지난 2023년은 이민 120주년을 기념하여 관심이 높았고 행사도 많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도 그런 관심이 꾸준히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역사를 제대로 갈무리하고 정신을 이어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고 자긍심을 확립하는 일은 다인종 다문화로 이루어진 미국 사회에도 큰 보탬이 된다. 캘리포니아 주가 ‘소수인종학’을 고등학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는데, 여기에 미주한인사 7개를 포함한 것도 그런 때문이다. 이 과목을 이수해야 졸업을 할 수 있다니, 그만큼 역사 공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미주 한인이민사 연구와 관련해서 몇 가지 개인적 소견을 말하고 싶다. 간단히 간추리면, 한국 정부의 체계적이고 전폭적인 지원과 미주 한인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 이런 연구와 사업은 조직적이고 장기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 학자는 물론이고 작가나 예술가 등 다양한 전문가들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점, 2세 전공자 등 폭넓은 연령층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점 등이다.   재외동포청이 지난해 의욕적으로 출범했다. 물론,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 많겠지만, 이민 역사 갈무리와 정리도 중요한 사업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민사 연구의 큰 방향을 제시하고, 각 분야의 연구를 지원하고, 그 성과를 종합적으로 정리해서 하나로 묶어나가는 작업은 개인이 하기 어려운 일이다.   미주 한인 초기 이민사 연구는 그동안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전문기관이나 학자의 층과 연구주제도 넓어졌고, 많은 책과 연구논문, 작품도 발표되었다. 특히 도산이나 박용만, 올림픽 영웅 새미 리, 김영옥 대령 등 인물 탐구와 독립운동사 연구는 꽤 깊은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늘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 다각적 시선과 예술적 상상력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초기 이민사 분야의 학자와 연구가로는 UC리버사이드의 장태한 교수, 역사 자료 정리와 저서 집필에 힘쓰고 있는 민병용 관장, 도산 연구가 윤병욱, 자료 수집 전문가 안형주, 멕시코 이민 연구가 이자경, 한국의 조규익 교수, 이구홍 등을 꼽을 수 있고, 기관이나 단체로는 하와이이민연구소와 하와이역사재단, 장태한 교수를 중심으로 결성된 ‘미주한인사 학회’ 등이 있다.   예술 쪽에서도 제법 많은 작품이 나왔다. 가장 많은 것은 문학작품으로 이언호 희곡 ‘사진신부의 사랑’, 장소현 장시집 ‘사탕수수 아리랑’, 한우성의 전기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박경숙 장편소설 ‘바람의 노래’, 이상묵의 ‘칼의 길’, 권소희 장편소설 ‘하늘에 별을 묻다’ 등 많은 작품이 발표되었다. 한국 작가의 유명한 작품으로는 춘원 이광수의 ‘도산 안창호’,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 희곡 ‘애니깽’ 등이 떠오른다.   영화로는 이진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무지개 나라의 유산’, ‘하와이 연가’ 등이 있고, 연극으로는 극단 시선의 뮤지컬 ‘도산’이 눈길을 끈다.   역사와 정신적 유산을 오늘에 생생하게 되살리는 힘은 역시 감동에서 나온다. 그래서 예술가들의 참여가 꼭 필요한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인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이민사 연구 이민사 연구 미주 한인이민사 연구논문 작품

2024-01-11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